누가복음 9:57-62 / 예수 똑바로 믿기 ⑦ 따름

    누가복음 9:57-62 / 예수 똑바로 믿기 따름

     

    길 가실 때에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또 다른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여러분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누군가를 스승으로 모시고 그를 따르며 살아온 경험이 있습니까? 사실 요즘 사람들은 스승과 제자라는 말을 잘 쓰지도 않고 스승을 두고 살지도 않을 만큼 자아가 강하기도 하고 그만한 스승이 없기도 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단순히 지식을 전달해 주는 학원 강사 정도처럼 여기는 경우도 많습니다. 실제로 방송이나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습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예수님을 따르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 그 가르침을 따르며 살아가는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예수 똑바로 믿기 설교를 하면서 당연히 예수님의 제자로 따르는 자세가 합당하지 그렇지 않은지를 점검해야 할 부분입니다.

     

    오늘 말씀에는 예수님을 따르겠다는 사람 세 명이 나옵니다. 그런데 여기에 나오는 세 사람 모두 예수님의 제자로 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되기가 까다로워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일까요? 아니면 높은 수준을 요구하셔서 그랬을까요. 이 세 사람을 살펴보면서 오늘 내 모습을 점검하고 예수님을 똑바로 믿고 따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57절에 먼저 소개된 어떤 사람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동일한 내용을 기록한 마태는 이 사람이 서기관이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819.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아뢰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리이다.

    여기서 말한 서기관은 율법학자를 말합니다. 서기관들은 율법을 해석하고 보존하는 일에 주력하였고 구전으로 내려오는 전승을 일상 생활에 적용하도록 다시 세칙을 만들어 지키도록 하는 역할을 맡은 사람입니다.

     

    당시 로마제국은 많은 점령지를 쉽고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점령지의 상황에 맞게 그곳에 지방 자치 정부를 허용해 주었습니다. 이러한 로마의 정책에 편승해 만들어진 것이 바로 산헤드린 공회입니다. 유대인들의 최고 권력기관이었습니다. 71명으로 구성되었는데 제사장, 사두개인, 바리새인, 서기관, 장로로 구성되었고 의장은 대제사장이 맡았습니다. 로마는 산헤드린을 총독의 권한 아래 예속시키기 위해 산헤드린 의장을 로마가 직접 임명했는데, 예수님 당시의 산헤드린 의장은 대제사장 안나스가 맡고 있었습니다.

     

    산헤드린의 역할은 종교적, 도덕적 또는 정치적 일까지 하였는데, 종교기능으로는 유대인 전체를 관리했습니다. 사도행전 9장에 나오는 장면이 있습니다. 1.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이들은 분명 유대 사회에서 권력층에 해당하는 사람들입니다. 생활이 보장되어 있고 급여가 충분한 자리입니다. 사람들로부터는 존경을 받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신분을 가진 서기관이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한 것입니다. 아마 당시에 신문을 발행했다면 헤드라인(headline)을 장식했을 것입니다. 아마 우리나라에 어떤 장관이나 국회의원이 예수님의 제자로 살기 위해 그 자리를 내려놓고 신학을 공부한다든지 아니면 선교사로 나가기 위해 준비한다든지 하면 지금도 분명 뉴스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서기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57. 길 가실 때에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 58.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네가 서기관으로 충분한 생활을 하고 있지 않느냐 그러나 나를 따르게 되고 내 제자가 된다면 다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지만 나는 머릴 둘 곳이 없다. 그래도 나를 따르겠느냐고 물으신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듣고 서기관이 그런 각오는 되어 있습니다. 말씀드린 대로 어디라도 따르겠습니다. 이렇게 결단을 내리고 따르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이 서기관은 지금 자신이 소속된 그룹보다 이제 예수님이 더 큰 권세를 누릴 것으로 기대하고 찾아왔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은 전혀 달랐던 것입니다. ~ 그래 아주 훌륭한 사람이 하나 왔구나, 그래, 어서 오너라, 네가 일하던 모든 것을 인정해 주고 내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권좌에 앉으면 네가 꼭 이런 일을 맡아주길 바란다. 아마 이런 말을 기대했을지 모릅니다.

     

    자신이 기대했던 것과는 너무 다르다는 사실을 느꼈을 것입니다. 또 예수님께서 그 서기관을 보셨을 때도 그 마음에 십자가의 길을 가는 자신을 따를 생각이 아닌 영광의 길을 생각하고 있음을 읽으셨을 것입니다.

     

    두 번째 사람이 등장합니다.

     

    두 번째 사람은 예수님이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59절에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런데 이 사람 역시 마태복음 8장에 소개되었습니다. 21. 제자 중에 또 한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제자라고 되어 있습니다. 12제자는 아니지만 아마 70명의 제자 그룹에 있었을지 아니면 다른 사람일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제자라고 부르실 만큼 예수님과 함께 한 시간이 많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고 하시자 그의 답은 59a.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아마도 이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로 살 만큼 준비가 되지 않아 보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특별히 불러주시고 기회를 주신 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축복이었지만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59b.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이 더 놀라게 합니다. 60. 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예수님이 너무도 냉정하게 아버지 장례식도 가지 못하게 하시는 것은 아닌가?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지금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이 아니고 아버지를 잘 모시다가 돌아가시고 나면 장례를 치르고 그 이후에 따르겠다는 뜻으로 말한 것입니다. 정확하게는 지금은 당장 따를 수 없습니다. 이것은 분명한 핑계로 보였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함께 해 오면서 제자라고 불릴 만큼의 시간들은 무엇이었느냐입니다.

    이 사람 역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예수님을 따르고 그 주변에 있었지만 정작 나를 따르라고 하시는 말씀에는 아버지를 앞세워 거부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사람도 서기관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영광의 순간이 오면 합류할 생각이었지만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자 포기하고 있는 것일지 모릅니다. 예수님의 답변을 보면 이 사람이 아직도 영적으로 죽은 자들과 다를바 없는 혼돈의 상태 혹은 갈팡질팡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60. 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네가 내 제자라면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늘 이렇게 혼돈에 빠지거나 우선순위가 바뀌면서 이런저런 핑계를 앞세울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라면 아니 예수님을 똑바로 알고 믿고 따른다면 너에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 구원해 주심 영생을 얻게 하심을 전파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삶의 중심이 여러 가지로 바쁘지만 복잡하지만 늘 중심이 하나님의 나라로 세워져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 사람입니다.

     

    61. 또 다른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이 사람 역시 말로는 주님을 따르겠다고 합니다. 다만 가족들과 먼저 작별하는 시간을 갖고 그 다음에 따르겠습니다. 우리 생각 같으면 그래, 알았다 어서 가서 걱정하지 않게 인사 잘 하고 오너라. 할 것 같은데 예수님은 62.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합당하지 않다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때는 이 사람이 가족과 작별하게 하는 시간을 달라는 것은 쟁기를 잡은 사람이 뒤를 돌아보는 것과 같다고 하시면서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작별인사라고 하는 그 말에는 뒤돌아보는 과거에 매여 있는 상태로 보입니다. 여기에 합당한 모델을 말한다면 사도 바울 것입니다. 빌립보서 3장입니다.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오늘 본문 누가복음 851절에서 지금 예수님의 심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열왕기상 19장에 엘리야와 엘리사의 장면이 있습니다. 19. 엘리야가 거기서 떠나 사밧의 아들 엘리사를 만나니 그가 열두 겨릿소를 앞세우고 밭을 가는데 자기는 열두째 겨릿소와 함께 있더라 엘리야가 그리로 건너가서 겉옷을 그의 위에 던졌더니 20. 그가 소를 버리고 엘리야에게로 달려가서 이르되 청하건대 나를 내 부모와 입맞추게 하소서 그리한 후에 내가 당신을 따르리이다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돌아가라 내가 네게 어떻게 행하였느냐 하니라 21. 엘리사가 그를 떠나 돌아가서 한 겨릿소를 가져다가 잡고 소의 기구를 불살라 그 고기를 삶아 백성에게 주어 먹게 하고 일어나 엘리야를 따르며 수종 들었더라.

     

    제하분주(濟河焚舟) 강을 건넌 뒤 배를 불사르다. 전쟁에서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각오를 말합니다. 1592(선조 25) 도요토미 정권이 조선을 침략하면서 발발하여 1598(선조 31)까지 이어진 전쟁을 壬辰倭亂(임진왜란)이라고 하지요. 이때 의병을 일으킨 鄭經世(정경세, 1563~1633)는 술을 끊어야 한다면서 제하분주를 인용하면서 누룩이나 술잔을 집안에 두지 않도록 했던 것입니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이런 각오를 다지면서 전쟁터에 나갔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부름을 받은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를 알고 각오를 갖지 않는다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믿음으로 주님을 따르면서 고난을 당합니까?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만납니까? 지극히 정상적인 것으로 더 당당해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사도행전 20장에서 에베소교회 장로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기도하기 전에 이렇게 말합니다.

    22.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 김선애2021.04.11 17:05

      따름이라는 제목을 보면서 질문합니다.
      나는 교회에가는 이유가 무엇인가? 살아가면서 나의 어느부분을
      채우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제자로 따르기 위해서인지 생각합니다.
      교회에 가는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던 어릴적에는 교회에 가서
      말씀듣고 친구들과 노는것이 좋아서 매주 재미있게 갔습니다.
      성장하면서 내가 어느 공동체에 속하여 있는것이 안정감을 주었습니다.
      지금은 오랜시간동안 예수님의 말씀을 배웠고 경험도 쌓여서
      어떤것이 옳으냐하는 고민을 함께 하고 있고 삶을 어떻게 살아내야
      할것인가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모두 제자로서의 따름을
      생각해야하는것이라고 오늘 말씀중에 느꼈습니다.
      주님앞에서 내가 하고싶고 해야하는것을 기도하였었습니다.
      시대의 변화앞에서 잘하고 있는지 자신없기도하지만 제자로서의
      나의 삶이 정체성을 가지고 분별하여 예수님의 도를 따르는
      삶인것을 잘 알겠습니다.

    • 김옥숙2021.04.11 22:10

      예수님을 믿고따르는 참제자의 삶은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를 기억하고 그 은혜에 보답하는 삶이며 믿음으로 어려운 일을 만날때 도망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수 있는 삶이며 바울이 푯대를 향하여 부르심의 상을 위하여 달려간다고 고백한것처럼 예수님을 삶의 1순위로 삼고 더 주님께 마음을 두고 달려나가는 삶임을 고백합니다.
      나를 따르라 부르신 주님의 합당한 제자로서 살아갈수 있도록 늘 은혜내려 주옵소서. 아멘
      오늘도 귀한말씀과 예배드릴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 김성년2021.04.12 09:37

      예수님의 부르심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대한 교훈 말씀인거 같습니다 이시대에 우리들도 내자신의 영달과 이익을 위하며 따르는것이 아닌가 점검해보고 이런저런 핑계로 말씀을 따르지않는 제자신도 회개하며 전적으로 주님을 따를수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 박민자2021.04.12 11:40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
      내 모든 주변 것들과 소중하다고 생각 했던것들 보다 예수님이 먼저 임을 잘 안다
      그러나 많이, 내 주변이 먼저인것 처럼 행해진다
      내 마음이 예수님께 향하는 것이 그래프로 나타내 진다면 얼마나 될까?
      모르겠다
      십자가의 그 귀한 사랑을 받고서도 그냥 그렇게 살고있다

    • 안진남2021.04.14 09:11

      예수님을 따름은 내가 가지고 있는 소중한 것들을 버려야 따를수 있다. 재물,권력,가족까지도 다 주님께 맡기고 나를 버려야 주님을 참으로 따르는것이다. 가진것도 그닥 있지는 않지만 본문의 세사람 같이 그리 쉽게 결정하지는 못 할것 같다. 그저 조금이라도 예수님 닮기를 원할뿐이다.

    • 박경숙2021.04.17 22:05

      따름~ 나를 부르시는 순간 즉각적으로 바로 따를수 있을까?나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지금 현재도 이런 핑계 저런 핑계로 받은 말씀 실천을 게을리하고 있으니까ㆍㆍ
      받을때는 분명 실천해야지 하곤 하는데 영이 자주 혼탁해진다.영육간에 강건할수 있도록 은혜를 구합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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