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6:13-17 / 예수 똑바로 믿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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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태복음 16:13-17 / 예수 똑바로 믿기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오늘부터 예수 똑바로 믿기를 시작합니다. “똑바로라는 [부사]1.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고 곧게. 2. 틀리거나 거짓 없이 사실대로라는 뜻을 가지고 쓰입니다.

     

    똑바로 보고 싶어요 주님- 온전한 눈짓으로-

    똑바로 보고 싶어요 주님- 곁눈질하긴 싫어요.

    하지만 내 모습은 온전치 않아 세상이 보는 눈은 마치 날 죄인처럼 멀리하며 외면을 하네요. 주님, 이 낮은 자를 통하여 어디에 쓰시려고 이렇게 초라한 모습으로 만들어 놓으셨나요. 당신께 드릴 것은 사모하는 이 마음 뿐, 이 생명도 달라시면 십자가에 놓겠으니 허울뿐인 육신 속에 참빛을 심게 하시고- 가식뿐인 세상 속에 밀알로 썩게 하소서-.

     

    똑바로 걷고 싶어요 주님- 온전한 몸짓으로-

    똑바로 걷고 싶어요 주님- 기우뚱 하긴 싫어요.

    하지만 내 모습은 온전치 않아 세상이 보는 눈은 마치 날 죄인처럼 멀리하며 외면을 하네요. 주님, 이 낮은 자를 통하여 어디에 쓰시려고 이렇게 초라한 모습으로 만들어 놓으셨나요. 당신께 드릴 것은 사모하는 이 마음 뿐 이 생명도 달라시면 십자가에 놓겠으니 허울뿐인 육신 속에 참빛을 심게 하시고- 가식뿐인 세상 속에 밀알로 썩게 하소서-.

     

    최원순 전도사님이 작사 작곡한 <똑바로 보고 싶어요>의 가사입니다. 최 전도사는 어느 교회 장애인선교회의 철야예배에서 찬양초청을 받고 예배하던 중, 간절하게 주님께 의지하며 기도하는 수많은 장애인들과 특히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한 자매의 모습을 봤다. 겉으로만 멀쩡한 세상 속의 영적인 장애인들이 주님 앞에 온전히 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었다는 간증을 읽었습니다.

     

    제가 설교 준비하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겠습니까? 똑바로 걷고 싶어요 주님을 똑바로 믿고 싶어요 주님 온전한 믿음으로 / 똑바로 믿고 싶어요 주님 온전한 순종으로...

     

    지난주일 마을 모임 첫 번째 질문이 이랬습니다.

    2021년 시작되면서 지난해보다 신앙적으로 성장하는 부분을 말해 봅시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올리신 마을모임 보고서도 읽어 보았습니다.

     

    저는 오늘 부터 설교를 하면서 우리 성도들의 믿음의 기대 혹은 기준을 높여야 되겠다. 상향 조정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찌 보면 사실인 부분도 있지만 교묘한 사탄의 속임수에 속는 것은 아닐까? 생각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알고 믿게 되었을 때 처음에는 다 그런 것처럼 너무도 당연하게 어린아이 신앙의 수준을 인정하고 오래 받아주다 보니 더 이상 자라지 못하고 그 수준에서 멈추거나 맴돌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알게 되고 믿게 되면 처음부터 달라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더 현실적인 사실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찾아왔던 수 많은 사람들 가운데 특별히 병들거나 귀신들리거나 했던 사람들은 즉시로 고침을 받게 되고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며칠 후 혹은 몇 달 후에 고침을 받게 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복음의 즉각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밤중에 예수님을 랍비라며 찾아왔던 요한복음 3장의 니고데모를 보면 한 순간에 변화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요한복음 7장에 니고데모가 다시 등장합니다.

     

    아랫사람들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로 오니 그들이 묻되 어찌하여 잡아오지 아니하였느냐

    아랫사람들이 대답하되 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 때까지 없었나이다 하니

    바리새인들이 대답하되 너희도 미혹되었느냐

    당국자들이나 바리새인 중에 그를 믿는 자가 있느냐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

    그 중의 한 사람 곧 전에 예수께 왔던 니고데모가 그들에게 말하되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심판하느냐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찾아 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 하였더라

     

    요한복음 19장에 다시 나옵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

    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 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

     

    이렇게 볼 때 12 제자들처럼 따르지는 않았지만 그는 바리새인의 신분이었음에도 예수님을 만났고 믿었고 따른 사람으로 볼 수 있습니다. 또 사도바울처럼 잘못된 열심히 주님을 거역하다가 제자가 된 경우도 있는데 그도 역시 사도행전 9장에 따르면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멸하려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그들을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 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니라

     

    이렇게 볼 때 복음의 즉각성을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12제자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구원자로 오셨는데 죄로부터 자신들을 구원하시기 위함이라는 것은 나중에야 바르게 알게 되었지만 그들이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를 보면 이렇습니다. 마태복음 4장입니다.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이 그의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오늘 말씀은 아주 단순합니다. 예수님이 공생애 3년차 마무리하시는 시기였습니다. 지난 3년을 가르치고 고치시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신 시간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한 두 번 들은 것이 아닙니다. 행하시는 기적을 수없이 경험하고 지켜본 이후의 시점입니다.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어떻게들 생각하고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자신을 인자라고 하신 이유는 다니엘서 713절의 말씀에 예고한 그 메시야임을 전제하고 있는 질문이었습니다. 제자들이 답합니다. 14절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이 대답에는 예수님의 지난 3년의 삶이 똑바로 전달되지 못하고 굴절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르게 이해하거나 본 것이 아닙니다. 심지어는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번에 다시 질문하셨습니다. 15절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너희는 당시 예수님의 부르심에 즉각적으로 순종하여 따른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을 듣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물으신 것입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내가 누구냐? 여러분의 답은 무엇입니까?

     

    물론 해답지가 16절에 분명하게 나와 있습니다. 16절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이 대답에 더할 것도 없고 뺄 것도 없습니다. 그냥 점수로 말한다면 100점이고 A+입니다. 그런 근거는 17절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아마 여러분도 이를 근거해서 대답했을 것입니다. 저는 다시 묻고 확인하고 가기 원합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에게 누구십니까? 예수님을 여러분은 누구라고 부르십니까? 주님이십니까? 베드로처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라고 하십니까? 헬라어 원문에는 주라는 단어는 없습니다. 이인칭 대명사로 예수님을 가르키고 있기에 주님이라고 의역한 것이기는 합니다. 결과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 첫 번째로 확인해야 할 부분이 예수님이 당신에게 주님이시냐는 것입니다. ‘주님이라는 뜻이 무엇입니까? 큐리오스 (Κύριος, Kurios in Greek)""를 의미합니다. 영어로 번역하면 "Lord, master" 우리식으로 말하면 주인님입니다.

     

    [] Lord, LORD 권위자에의 경칭 또는 노예에 대한 주인의 호칭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히브리어를 헬라어로 번역할 때 히브리어 [야웨 hwhy]를 헬라어 [큐리오스 kuvrio"]()로 번역한 것입니다. 로마제국이 황제를 예배하도록 할 때 역시 큐리오스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자신은 황제의 종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밝혔습니다.

     

    로마서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빌립보서 1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종이란 결국 주인과의 관계에서 노예입니다. 노예란 다른 사람의 합법적인 소유가 되어 그들의 의지에 복종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1세기 노예제도에서 노예가 된다는 것은 모든 면에서 주인에게 전적으로 예속된 소유물이 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노예를 자신의 일부분, 즉 완전히 다른 사람의 소유물이 된 사람으로 정의했고, "원칙적으로 노예는 아무런 권리도, 어떤 법적 자격도 없었습니다.

     

    역사학 교수인 스코트 발트치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1세기 노예들의 유일한 공통점은, 각자 주인이 있었다는 점 뿐이다. 한 노예가 경험하는 삶의 질은 대부분 전적으로 주인 가족의 관습과 주인이 운영하는 사업과 주인이 속해 있는 독특한 사회 계층과 주인의 인격에 달려 있었다. 노예들의 존재 목적은, 주인에게 충성스럽게 순종함으로써 모든 면에서 주인을 기쁘게 하는 것이었다고 했습니다.

     

    당신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십니까? 그 사실을 그냥 익숙해서 하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정말 그 뜻과 의미를 알고 하시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바울은 로마서 14장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가르칩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로버트 멍어 (Robert Boyd Munger)가 지은 책 내 마음 그리스도의 집

     

    예수님을 마음에 모셔들인 후,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삼는 모습을 집에 비유하여 묘사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분께 내 마음의 집을 보여 드렸습니다.

    그러자 그분은 지저분한 서재를 깨끗이 치워 주셨고,

    욕구를 채우기에 급급했던 주방을 하나님의 양식으로 채워 주셨습니다.

    거실은 그리스도와의 대화하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이제 작업실에는 그분의 손길이 드러나게 되었고,

    오락실에는 주님이 주시는 진정한 기쁨과 참 행복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부족했습니다.

    나는 집 문서를 그분께 맡겼습니다.

     

    그 날, 그분은 내 삶을 받으시고, 나의 주인이 되셨습니다.

    이제 영원토록 나는 그분의 것이요 그분은 나의 것입니다.

     

    오늘 다시 한번 여러분의 인생의 주인이 누구신지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관계를 분명하게 하셔야 똑바로 예수님을 믿을 수 있고 따를 수 있습니다.

     


    • 김옥숙2021.02.28 17:16

      예수님을 주님이라 부를때는 나의 주인으로 삼고 그분뜻에 복종하며 살겠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데 고백따로 삶따로의 모습이 되어서는 안되겠다 생각하며 돌아봅니다.
      예수님을 똑바로 믿기위해서는 예수님을 주인으로 하는 확실한 관계설정하에서 모든 말씀에 즉각적으로 순종함이필요한을 느끼기도 합니다.
      주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나의 의지가 아니라 그분의 뜻에 따라 움직일수있도록 지혜와 능력 주시길 기도합니다.아멘

    • 김선애2021.02.28 20:54

      제목부터 마음이 찔립니다.
      잘하고 있는지 스스로 물으면서 지금까지 왔습니다.
      그냥그냥 보기에 이정도면 평균은 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 새롭게 나에게 질문합니다. 똑바로 하고 있는가?
      몸이 비대해져서 굼뜬 움직이기 귀찮아서 인상쓰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반성하겠습니다. 주님 말씀에 바로 반응하는 충성스러운 종이 나의
      모습이어야 함을 잘 기억하겠습니다.

    • 황미진2021.02.28 23:46

      저에 신앙의 목적은 "예수님 잘 믿기" 입니다
      잘 믿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누구이신지,예수님의 생각과,뜻을 잘 알아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 설교말씀을 통해서 더욱 중요한 포인트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나에 주인이심을 인정하는가 입니다
      몇일전에 베드로의 고백을 몇번이고 입으로 대뇌인적이 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이 고백이 저에 고백이 되게 해주신 주님
      감사합니다
      이러한 기적을 저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합니다
      주인되신 예수님을 똑바로 바라보는 신앙인의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 김성년2021.03.01 08:19

      예수님을 주로믿고 의지하며 모든것을 맡기며 나의모든것 내것이아니고 주님것임을 확실하고 똑바르게 알고 인식하며 생활에 실천할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 박민자2021.03.02 17:06

      죄송하고 불편한 마음으로 주일을 맞았는데 설교제목 부터 여러 말씀들이 마음을 더 찔러댔다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와 질문을 했을때 너는 선생이면서 그것도 모르냐는 말씀에 너는 권사이면서 왜그러냐? 하시는듯...
      죄송함에 잠을 설치고 말씀보며 기도 할때 주님주님 하곤 했었는데 주여주여 하면서 즉각적인 변화됨과 행동이 없음은 무슨 소용이겠느냐는 말씀에 찔리고 찔렸다
      수많은 은혜와 사랑에 가슴 벅찬 감격과 감사함에도 부족함은 여전히 반복되는 인생이다
      인생의 주인이신 내 주님께 종으로써의 본분을 잘 감당 하기를 다짐해 본다

    • 안진남2021.03.02 17:48

      예수님 똑바로 믿기 라는 말씀을 들으며 나는 어떡해 믿고 있나 돌아보게 된다. 성장하는 믿음이어야 되는데 오히려 뒤로 돌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베드로의 고백과 같이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라는 고백이 스스럼없이 나올수 있도록 말씀과 기도로 믿음의 기반이 단단해지도록 해야겠다.

    • 박경숙2021.03.05 20:50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라 아멘 하나님은 나의 주인이십니다.하나님의 부르심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못했던 저자신을 회개하며 순종하는 믿음 으로 성장하길 소망합니다.성령충만함으로 인도하시옵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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