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 주일 / 이 남자의 믿음(마태복음 1: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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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20 성탄 주일 / 이 남자의 믿음(마태복음 1:18-21)

     

    마태복음 1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 21세기, 이 시대의 특징을 말한다면 무엇일까요? 탈근대(현대)주의 또는 포스트 모더니즘(post modernism)이라고 합니다. 이 포스트 모던이즘의 특징은 일반적으로 근대주의로부터 벗어난 서양의 사회, 문화, 예술의 총체적 운동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근대(현대)주의를 거부하거나 탈피하는 것이라면 현대주의는 어떤 시대인지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근대주의의 특징이라면 이성중심(과학중심)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이성과 과학을 우선하게 된 이런 현대주의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습니까? 이것도 그 이전 전근대사회에 대한 반발이었습니다. 그래서 계몽주의라고도 말을 하는데 중세 종교사회에 대한 반발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일의 대표적인 사건이라면 1789년에 일어난 프랑스 혁명입니다. 봉건주의에서 시민사회로 전환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외친 구호도 자유, 평등, 우애(박애)였습니다. 당시 프랑스왕권은 루이 14(재위 1643-1715)가 완성한 절대주의 체제로 가고 있었습니다. 로마 카톨릭이 기본 종교였던 그들에게는 소수의 귀족과 성직자들만이 별도의 특권 신분을 구성하고, 국민의 90%를 차지한 평민층이 폭발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신분제는 소수의 특권층인 제 1신분 성직자[10, 전국토의 1/10 소유]와 제 2 신분은 귀족으로 [40)이 전국토의 1/5의 넓은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으며 나머지는 평민들로 구성되어있었습니다. 결국 루이 16세가 처형되기까지 엄청난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깨우쳐야 하고 그러기 위해 교육하며 계몽한다며 이전의 기본 가치관을 부정하게 되면서 함께 무너지고 버리게 된 것이 많습니다. 그중 하나가 하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지도자들의 잘못으로 하나님에 대한 것까지 부정하게 된 것입니다.


    최근 안산의 한 교회라고 뉴스에 나오는 것을 봤습니다.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일들이 일어났는데 정상적인 교회가 아니고 이단으로 알려졌지만 여전히 교회요 목사라는 이름으로 뉴스화 되기 때문에 기독교는 늘 부정적인 모습으로 비쳐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단이기에 할 말은 없으나 사람이 잘못된 종교적 신념이나 잘못된 믿음으로 살게 되면 비록 그곳이 교회라고 하고 기독교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어도 아주 심각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자신들이 속한 공동체를 부정할 수 없어 그렇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그렇게 굳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다시 이 시대의 특징으로 돌아와서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갖는 가장 큰 특징은 '절대 진리'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논리나 이성적 판단이나 과학적 자료도 모두 중요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자신만이 중요하고 자신의 판단이 중요하게 되어 그 누구의 말도 어떤 것도 믿지 않으려는 경향이 크다는 것입니다. 이럴 경우 부모님을 따라 하나님을 섬기거나 선생님이 말씀하시니까 따르거나 하는 일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런 계몽주의나 현대주의 혹은 그 이후 포스트모던 사회 더 나아가 지금은 코로나 이후 세상으로 나누어야 할 현실이 되었습니다만 진리는 변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진리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주 예수님이 진리 이십니다. 요한복음 14:6 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7:17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요한복음 18

    37.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대 38. 빌라도가 이르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

     

    하지만 빌라도는 진리에 대하여 질문만 하고 듣지 않았습니다. 깨닫지도 못하고 자신의 눈앞에 계신 예수님을 알지도 못한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면 빌라도처럼 죄가 없다고 자기 입으로 말하고서도 예수님을 주이게 됩니다.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면 기독교인라고 하면서 교회를 다녀도 예수님이 아닌 다른 것으로 끌리게 됩니다. 진리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말씀 비슷한 것을 믿거나 자기가 원하는 것을 믿거나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일은 어느 한 시대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시대건 양상은 다르지만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중세, 근세 포스트모던 시대가 아니어도 예수님 이전 시대도 그리고 심지어는 진리이신 예수님이 오셨던 그 시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 나오는 남자 요셉은 결혼을 앞둔 젊은 청년 요셉이었습니다. 그가 살았던 그 시대 모습은 오늘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에게 세대가 다르고 시대가 다르며 급변해 가는 시대를 살아도 변함이 없는 진리이신 예수님을 다르고 그분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셉을 보겠습니다.

     

    그는 건강한 청년으로 마리아라는 처녀와 약혼을 하고 결혼을 앞둔 청년이었습니다. 당시에 약혼이라는 제도는 약혼을 한 뒤 약 1년 후에 결혼식을 했습니다. 현대의 약혼과 달리 성경의 약혼은 법적으로 구속력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신명기에는 여자와 약혼하고 그를 취하지 못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찌니 전사하면 타인이 그를 취할까 하노라”(20:7)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분명하게 약혼한 관계인데도 아내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이런 약혼이 깨어지는 때도 있었는데, 간음 등의 수치스런 일을 했을 경우였습니다. 이런 때는 그 약혼한 당사자에게 이혼증서를 써주고 집으로 돌려보도록 했습니다(24:1).

     

    요셉과 마리아의 약혼 요셉은 마리아와 약혼하고 있는 동안에 그녀가 임신한 것을 알게 됩니다. 당시 관습에 따르면 약혼한 기간 중에 다른 이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잉태한 경우엔 율법에 따라 이혼증서를 주거나 돌로 치는 것이(22:20-24)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요한복음 8장에 나오는 말씀이 있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아마 요셉도 건강한 청년으로 약혼을 하고 설레이는 시간을 보내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꿈꾸던 결혼을 앞두고 큰 위기가 닥쳐왔습니다. 그것은 약혼한 마리아가 임신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아마 이 이야기는 마리아가 요셉에게 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이 일을 생각할 때에

     

    물론 그 마음이 얼마나 괴롭고 힘들고 어려웠겠습니까? 마리아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누가복음 1장에 마리아에게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나서 말했습니다.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그에게 들어가 이르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생각하매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이 사실을 그러니까 마리아가 임신한 사실을 언제 알았는가? 그리고 요셉에게는 언제 말을 했는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마리아도 요셉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그때 나이가 10대 소녀였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 당시에 보통 12-14살에 약혼을 하고 1년 정도 있다가 결혼을 했으니까 혹 나이가 좀 들어 늦었다고 해도 10대 후반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친족 엘리사벳에게로 달려갔습니다. 마리아는 나사렛에 살고 있었고 엘리사벳은 예루살렘에 있었으니 그 거리가 직선거리로 150km 정도입니다. 그러나 그 시대에 직선 고속도로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산길을 걸어 오려면 군인들이 하루에 30km를 걸었다고 하니 그보다는 멀리 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며칠을 걸려 찾아왔을 것입니다. 그리고 요셉에게도 이 소식을 알렸을 것입니다.

     

    이때 요셉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하지만 요셉은 그렇게 하지 않고,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1:19) 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천사를 요셉에게 보내셔서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1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드러내지 않고 가만히 끊고자 했다는 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마리아가 돌에 맞아 죽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이를 낳아도 자신이 얼마간 남편으로 역할을 하며 보호하겠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일이 어디 쉬운 일이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일로 고민하며 힘들어한 후 결단했을 때 천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리고 동일하게 마리아에게 해 주었던 것처럼 요셉에게도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고, 성령으로 된 일이라고 전했습니다. 사실은 이 소식을 듣고 난 후 요셉의 모습이 더 멋져 보입니다.

     

    이 사실을 받아들입니다. 꿈에 나타나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이게 단순한 꿈으로 혹은 내가 많이 고민하니까 이런 꿈을 꾸었는가 보다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단순한 꿈이 아님을 알아차릴 수 있는 정도의 믿음을 가진 청년이었습니다.

     

    예수님도 그 시대 사람들을 평가하실 때 노아시대처럼 주님 다시 오실 때도 그럴 것이라고 하신 말씀이 마태복음 24장에 나옵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노아시대도 그랬다면 예수님 오실 때만 그러겠습니까?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시대 풍조를 따라 살기에 바쁩니다. 하지만 요셉에게서 그런 모습을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를 왜 의로운 사람이라고 했는지 알 것 갔습니다. 의롭다는 성경의 표현에서 흠이 없다는 뜻도 있으나 사람들이 의롭다고 하는 것은 믿음으로 살려고 말슴대로 순종하며 살려고 거룩함에 마음을 두고 살았다는 뜻입니다. 노아도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다고 하면서도 그를 당대 의인이라고 부른 것과 같습니다. 창세기 69.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성탄절이 다가옵니다. 코로나로 어느 때와도 비교할 수 없는 성탄절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일에 복되게 쓰임 받은 사람 요셉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귀하게 보입니다. 이번 다가오는 성탄을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이 시대를 따르지 않고 분별하는 믿음의 눈으로 요셉처럼 넉넉한 마음과 결단력 있는 믿음으로 이 시대를 이겨가기를 원합니다. 주님을 향한 그의 거룩한 마음이 없이는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는 열망이 없이는 생기지 않는 믿음입니다. 요셉은 오시는 예수님을 그렇게 친히 영접할 수 있는 축복을 얻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은 그때도 지금도 예수님을 영접하는 사람은 복입니다. 우리 주님을 아주 진지하게 다시 생각하시며 성탄을 맞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 김선애2020.12.20 16:39

      하나님의 역사는 예언되었고 성취됩니다.
      그가운데 믿음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당시의 사회적문화를 거스르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기 위해 죽음까지 각오해야 하는 결단은
      지금의 나약한 나의 믿음을 생각하면 비교할수
      없을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시대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믿음의 사람들은 오늘날에도 동일합니다.

    • 박경숙2020.12.20 20:45

      저의 지금 상태로는 마리아와 요셉의 믿음을 따라갈 수 없을거 같습니다.하지만 더 더 주님과 소통하고 사모함으로 주의 나라를 구할때 단단하고 확고한 온전한 믿음으로 세워주실줄 믿습니다. 영육간에 강건한 믿음으로 성장하게 하시옵소서아멘

    • 김옥숙2020.12.20 21:45

      예수님이 오시는데 귀하게 쓰임받은 마라아와 요셉은 세상의 방식 유행 가치관을 따르지 않고 경건한 사람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 앞에서도 믿음으로 잘 수용하는 귀한 모습에 도전을 받습니다.
      저또한 이리 살아야함을 교훈받고 특히 우리의 자녀들이 이와같은 믿음으로 하나님께 귀히 쓰임받을수 있길 기도합니다.아멘
      오늘도 예배드리고 귀한말씀 준비해서 전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 안진남2020.12.26 11:48

      이 남자의 믿음이라는 제목 부터가 왠지 멋지다. 어느 시대던 갖시관은 두 부류에 속하는데 세상을 따르는 부류가 아닌 하나님을경외하여 말씀이 진리임을 믿고 요셉과 같이 주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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