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신앙(8) 종교개혁정신 요한복음 2:13-22



    1025 / 건강한 신앙생활(8) 종교개혁 정신 / 요한복음 2:13-22

     

    13.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14.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15.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16.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17.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18.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20.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22.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오늘은 건강한 신앙생활 시리즈 8번째 시간이면서 동시에 종교개혁 503주년이 되는 주일이기도 합니다. 종교개혁이야 말로 건강한 신앙생활을 위한 결단이고 패러다임의 전환이었습니다. 503년 전인 1517년 종교개혁의 도화선이 되었던 것은 1031일 루터가 면죄부를 포함한 교황의 폭정과 로마 가톨릭의 비성경적 가르침에 대한 토론을 제안하는 반박문을 내건 것이었습니다. 그중에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면죄부라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를 말한다면 고해성사입니다. 4차 라테라노 공의회(1215)에서 확실한 규정을 세웠습니다. 1년에 2번 이상 보도록 의무화하고 있는데, 이를 판공 성사(辦功聖事)라고 한다는 카톨릭사전에 나온 내용입니다. 세례 성사를 받은 신자가 세례 이후 지은 죄에 대해 하느님께 용서받으며 교회와 화해하게 하는 성사이다. 죄를 통회하고 고백한 신자는 사제를 통해 하느님께 죄 사함(사죄)의 은총을 입고 사제가 정해 준 보속을 이행함으로써 죄를 보상하거나 속죄하게 된다.

     

    지금까지도 이런 고해성사라는 이름으로 회개와 보속을 행하여 죄를 용서 받는다고 하는 가르침을 따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떻게 보면 말로만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뭔가 잘못에 대한 댓가를 치루어야 한다는 생각이 현실적이고 인간적으로 이해하기 쉬울지 모릅니다.

     

    그러면 어떤 근거로 이렇게 했을까? 예수님 당시에 그 지역에는 네 개의 언어가 공존했었습니다. 히브리어를 비롯하여, 아람어, 헬라어, 로마의 라틴어가 바로 그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빌라도가 패를 만들어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19:19)는 말을 새겨 넣었는데, 이때 패에 기록된 언어는 히브리어, 헬라어, 로마어(라틴어)였습니다(19:20).

     

    19. 빌라도가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이니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되었더라 20. 예수께서 못 박히신 곳이 성에서 가까운 고로 많은 유대인이 이 패를 읽는데 히브리와 로마와 헬라 말로 기록되었더라.

     

    그런데 마태복음 4:17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를 당시 사용하던 제롬이 번역한 라틴어(불가타 번역) 성경에서는 회개라는 헬라어 메타노이아"죄 값을 치루어라. 천국이 가까웠다"(poenitentiam agite) 번역했습니다. 반면에 당시 인문학자였던 에라스무스는 1516판 번역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poeniteat vos)로 번역했습니다.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결과를 내게 됩니다. 죄 값을 치르기 위한 보속(선행)으로 그리고 면죄부로 이어지는 근거가 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이 사용하던 아람어로 번역하면 '타브(tab)'라고 하는데 '돌아오다', '회복하다'는 뜻입니다. 회개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맡기신 그 사명을 깨닫고 그 길로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명령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멸망에서 건짐 받게 되는 구원, 죄 용서는 오직 예수님 보혈 뿐 입니다. 십자가에서 나를 대신하여 값아 주신 그 값으로 용서 받는 거 말고는 그 어떤 것으로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 어떤 것을 거기에 끼워 넣는다면 그것은 십자가의 죽음을 헛되게 하는 것이라고 사도 바울은 강력하게 경고합니다.

    1

    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5. 영광이 그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8.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다시 루터 이야기로 돌아와서 봅니다. 그가 95개 조항을 말하면서 그들이 지금까지 수백 년이 넘도록 해 오던 일이 잘못되었고 그것은 성경에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고 했던 것입니다.

     

    1. 우리들의 주님이시며 선생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4:17)고 말씀하실 때 그는 신자들의 전 생애가 참회(깊이 뉘우치는 것)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2. 이 말씀은 하나님께 드리는 성례전적 참회 곧 사제의 직권으로 수행하는 고백과 속죄로서 이해할 수는 없다.

     

    3. 그러나 이 말씀은 다만 내적인 회개만을 뜻한 것은 아니다. 그럴 수도 없다. 만일 그 같은 내적 회개가 육신의 정욕의 여러 가지 억제를 외부로 나오지 않게 한다면 그 회개는 무가치한 것이다.

     

    4. 그런 고로 사람이 자기 자신을 미워하는 한에는(참 내적 참회) 형벌이 계속할 것이다. 즉 우리들이 하늘 나라에 들어갈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5. 교황은 그 직권 혹은 교회법의 위세로 부과된 형벌 이외의 어떤 벌이든지 용서할 힘이나 뜻(意志)을 가지지 못한다.

     

    6. 교황은 하나님께서 죄를 사하였다는 것을 선언 혹은 시인하는 이외에 어떤 죄든지 사할 힘이 없다.

     

     15171031일 마르틴 루터가 비텐베르크 교회 문에 ‘95개조 반박문을 못으로 박고 있는 모습. 페르디난트 포웰스가 1872년 그린 그림이다. 이른비 제공

     

    이뿐만 아닙니다.

    1229년 톨로사 회의에서는 평신도들에게 성경 읽는 것을 금지시켰습니다. 또 성찬시 배잔이 신자들에게 금지(1414)하고 지금도 떡만 주기도 하고 어떤 때는 포도주를 주기도 합니다. 1546년 트렌트 회의를 통해 십계명에서 우상숭배에 관한 계명을 빼고 열 번째 계명을 둘로 나누었습니다.

     

    당시 로마 카톨릭으로는 감히 이런 말을 하다니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1864년 자신들이 하는 모든 일에 흠이 없고 그런 명령을 하는 교황은 오류가 있을 수 없다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종교개혁은 단순히 일어난 사건이 아니고 오래도록 인내하신 하나님께서 더 이상 방치 할 수 없는 지점에서 한 사람 그리고 또 다른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하신 일입니다. 유럽교회는 이 종교개혁을 통과하면서 영광스러운 복음의 회복과 참된 교회의 부흥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본문으로 돌아와서 봅니다. 이미 루터보다 앞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더 충격적이었습니다. 무대는 이스라엘입니다. 이 사람들은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 성전 중심, 율법 중심으로 뭉치고 먹고 마시고 생활하는 모든 것이 여기에 맞춰진 사람들입니다. 그 중에서도 오늘 본문에 나오는 유대인의 유월절은 아주 큰 명절이고 종교 행사입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그 예루살렘 성전에 가신 것입니다. 가서 보셨더니 하나님께 예배하는 성전 안에는 많은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루터처럼 95개 조항을 선포하거나 붙이신 것도 아닙니다. 그 자리에서 15.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16.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한 마디로 큰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냥 있을리 없었던 유대인들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한 마디로 유월절 큰 대목에 돈을 벌 절호의 기회인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지금도 그렇지만 예수님 당시에도 해마다 유월절이면 세계 도처에 흩어진 유대인들이 유월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에 왔습니다. 당시 예루살렘 인구가 5만 명 정도라고 하는데 순례객들은 대략 2백만 정도였다고 합니다. 디아스포라들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돌아와 희생제사를 드렸는데 그곳에서 파는 흠 없는 양을 제물로 사용해야 한다는 이유로 직접 가지고 온 제물은 흠이 많다고 트집을 잡아서 드릴 수 없었습니다. 그곳에서만 사야 했습니다.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유월절 기간동안 이 곳에서 255천마리의 어린양이 거래되고 희생제물로 바쳐졌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성수기에는 평상시보다 가격이 16배 올랐다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성전세도 바쳐야 했습니다. 로마 화폐가 아닌 성전 화폐만 받았습니다. 문제는 4~5배의 환전 수수료 폭리를 취했다는 것입니다. 20세 이상이면 다 내야 했던 성전세는 이틀치 품삯인 2데나리온이나 했습니다. 당시 반 세겔은 노동자 이틀치 일당에 해당된다. 최저시급으로 계산하면 이틀에 10만원 정도에 해당하는 금액입니다.

     

    그런데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셔서 휘두르셨으니 그 분위기가 어떠했겠습니까?

     

    종교개혁 시대도 그리고 예수님이 계시던 그때도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탐욕입니다. 탐욕이 타락으로 떨어지게 합니다. 탐욕에는 편법과 불법과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이름까지도 이용합니다. 오늘 본문에 성전에서 제사한다는 이름으로 이렇게 한 것입니다.

     

    이때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주목하면서 묻습니다.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예수님의 대답이 더 충격적입니다. 이 성전을 헐라. 아니 이 성전은 하나님의 집이고 하나님이 계시는 곳인데 이것을 헐라고? 그러면서도 아니 이 성전이 없으면 우리는 어떻게 살라고 하는 말인가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너희가 이 성전을 헐면 내가 3일 만에 다시 일으킬 것이라 하신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언제부터 이런 계획을 가지고 계셨을까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신 성전을 헐라고 하신 그 말씀, 그 이전에 다윗이 하나님의 성전을 짓겠다고 했을 때 네가 아닌 아들 솔로몬 때 지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분명 하나님께서 성전을 건축하라고 하셨고 포로 이후에도 학개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 하셨습니다. 학개 선지자는 오직 성전을 건축하라고 하는 말씀을 전한 선지자 였습니다. 학개 18.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법궤도 이방인들에게 빼앗기게 하시고 성전이 불타게도 하셨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성전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상징으로 의미가 큰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처음부터 성전이라는 이름으로 건축물에 뜻이 있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생활 자체를 원하십니다. 다만 오늘날 예배드릴 장소로써 예배당이 필요할 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당시 현실적으로 제사를 드리던 시기였는데, 오늘과 같은 환경이 아니었는데도 그 성전을 헐고 새로 지을 것이라 하셨던 것입니다. 그 성전은 예수님 자신이셨습니다.

     

    하지만 그 말씀을 듣던 유대인들이나 제사장 혹은 성경 학자들까지도 또 예수님의 제자들까지도 무슨 말씀인지 알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22.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종교개혁주간에 그리고 건강한 신앙생활을 위해 절대적으로 우선 되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문자적으로 성경을 외우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뜻하고는 멀었습니다. 먼 정도가 아니라 왜곡되고 거짓되기까지 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능력을 가져야겠습니다. 말씀을 가르침 받기를 힘써야 합니다. 모든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내게 그리고 우리에게 분명하게 드러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고 순종하는 일을 계속할 때 이전에 알지 못하던 하나님의 크신 계획과 뜻을 알 수 있습니다. 배워가게 됩니다.

     

    더 이상 건축물을 보면서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에덴동산에서도 광야에서도 솔로몬 시대를 지난 그 이후에도 동일하게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우리가 오늘날 여전히 헐어야 하고 세워야 할 성전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2

    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 김옥숙2020.10.25 18:03

      오늘 말씀을 통하여서 바른 성경의 가르침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카톨릭의 비성경적인 가르침과 잘못된 해석은 죄값을 치르는데 보속행위가 전제되어야하며 이것은 면죄부까지 이어지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 유월절 예배를 드린다는 명목하에 높은 성전세와 제물을 폭리로 취한 성전종사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분노도 봅니다.
      46년동안 지은 성전을 헐고 사흘만에 지은다는 말을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임재하시는곳이 성전이며 성도들 한사람한사람을 처소로 하여 임재하시며 주님을 모퉁잇돌로하여 모든 성도들이 함께 성전은 세워가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늘 말씀을 잘배우게 하시고 바른 가르침으로 모든 성도들이 든든하게 성전을 잘세워나가도록 한사람한사람의 믿음이 같이 성장하여 나아가길 기도합니다.아멘
      오늘도 예배드리고 귀한말씀 듣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 김성년2020.10.26 07:59

      형식적이고 거창한 사람들의눈으로 보이는 화려한 성전이 야닌 마음속에 교회안에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동행하는 참된성전이 우리안에 교회안에 세워지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박민자2020.10.26 12:15

      지도자의 잘못된 가르침, 분별력이 부족한 사람들, 특별히 분별력이 극히 부족한 기독교인들의 사회에 끼치는 일들은 심각하다
      한번 생각이 굳혀지면 바꿀려고 하지 않는 고집스런 인생이기도 함에 합리적 사고와 상식이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늘 자신을 잘 들여다볼수 있는 주의 백성이되기를 구해봅니다
      내자신이 개혁되어야 할부분은 현실을 넘어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바라볼줄 아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매일아침 기도하고 말씀보고 큐티 하고 있는 내자신에게 어느날 왜 그렇게 하고 있나? 하는 질문이 들었다
      내속을 스스로 들여다 보니 구속의 은혜 천국백성 삼아 주심에 감사와 감격은 당연한듯 제쳐져 있고 우선 내가족의 안위와 닥칠까 두려운 일들이 닥치지 않기를 간구하는 것에 훨씬 더 많이 치우쳐 있는 내 신앙 상태를 임을 느꼈다
      구원의 은혜를 받은자로써 하나님이 가장 기뻐 하시는 생명 살리는데 깊은 기도와 행동으로 개혁 해야겠다

    • 김선애2020.10.26 12:35

      종교개혁이라 이름하는 루터의 행동은 결국에는 신앙생활을 바르게 해야한다는
      잘못된 것으로부터 돌아켜야한다는 전쟁선포였다.
      성전에서 매매상인들을 내쫒으신 예수님의 모습또한 마찬가지이다.
      모두가 바라는 건강한삶.
      이것은 몸과 정신 모두를 뜻하는것이다.
      우리의 삶은 영육의 강건함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날마다 나를 개혁하고 새롭게 나아가는 원동력으로
      작용하여 거룩함이 능력이 되기를원한다.

    • 박경숙2020.10.28 22:54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삶을 살아가는 자녀이고 싶습니다.어느자리에 있든지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나의 중심에 계시기를 소망합니다아멘

    • 안진남2020.10.29 20:07

      개혁 한다는 것은 쉽지가 않다. 바르지 못한것을 말하는것도 힘든데 개혁하여 바르게 고친다는것은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종교개혁으로 바르게 섬기게 되어 감사하고 주님 보시기에 나의 잘못된 부분도 바꾸어가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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