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신앙생활(5) 맹종과 맹신 / 사무엘상 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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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4 건강한 신앙생활(5) 맹종과 맹신 / 삼상 4:1-11

     

    1. 사무엘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 전파되니라 이스라엘은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려고 에벤에셀 곁에 진 치고 블레셋 사람들은 아벡에 진 쳤더니 2.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대하여 전열을 벌이니라 그 둘이 싸우다가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패하여 그들에게 전쟁에서 죽임을 당한 군사가 사천 명 가량이라 3. 백성이 진영으로 돌아오매 이스라엘 장로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에게 오늘 블레셋 사람들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하니 4. 이에 백성이 실로에 사람을 보내어 그룹 사이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의 언약궤를 거기서 가져왔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언약궤와 함께 거기에 있었더라. 5. 여호와의 언약궤가 진영에 들어올 때에 온 이스라엘이 큰 소리로 외치매 땅이 울린지라.

    6. 블레셋 사람이 그 외치는 소리를 듣고 이르되 히브리 진영에서 큰 소리로 외침은 어찌 됨이냐 하다가 여호와의 궤가 진영에 들어온 줄을 깨달은지라 7. 블레셋 사람이 두려워하여 이르되 신이 진영에 이르렀도다 하고 또 이르되 우리에게 화로다 전날에는 이런 일이 없었도다 8. 우리에게 화로다 누가 우리를 이 능한 신들의 손에서 건지리요 그들은 광야에서 여러 가지 재앙으로 애굽인을 친 신들이니라 9. 너희 블레셋 사람들아 강하게 되며 대장부가 되라 너희가 히브리 사람의 종이 되기를 그들이 너희의 종이 되었던 것 같이 되지 말고 대장부 같이 되어 싸우라 하고 10. 블레셋 사람들이 쳤더니 이스라엘이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고 살륙이 심히 커서 이스라엘 보병의 엎드러진 자가 삼만 명이었으며 11.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더라.

     

    맹종과 맹신은 가까운 이웃사촌 같은 단어다. 맹종이나 맹신이 가져온 결말은 늘 심각했다. 어떤 경우는 맹종하다가 혹은 맹신하다가 전 재산을 잃기도 하고 더 나아가 생명을 잃기도 한 경우다. 이런 경우 대부분은 이단 종교와 사이비 종교에 나타나는 결과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표적으로 천부교로 알려진 전도관이라는 이단이 성행했던 것을 기억한다. 신앙촌이라는 집단생활을 하면서 살았지만 결과는 인생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것이다.

     

    전도관은 처음에 1957년 박태선과 그를 따르는 목사 및 장로에 의해 설립되었다. 이는 신앙공동생활을 위해 것이었다. 신앙촌에서는 각종 생필품을 만들어 시중에 공급하였다. 그러다가 1980523일 박태선은 자신이 창조주 하나님이라고 선포하게 된다. 그러면서 만든 것이 천부교(天父敎)’라는 종교를 만들었다. 그리고 199027일 박태선이 사망한 이후에도 천부교 신도들과 기존의 예수교 신도들 사이에 교회재산을 놓고 신앙과 재산분쟁이 계속되었다. 초창기 전도관이라는 이단이 세워질 때 허덕수 장로는 박 태선과 함께 전도관을 세운 주역이었다.

     

    그의 아들에 따르면 전도관에 헌금을 제일 많이 한 사람 중 하나일 겁니다. 여주, 경주, 강진 등 전국 10여 곳에 도자기 공장을 갖고 계셨는데, 웬만한 시군을 통째로 살 수 있을 정도의 재산이 있었어요. 현 시가로 1000억 원대에 달하는 재산을 헌금하셨죠. 신앙촌에 기와 공장, 도자기 공장을 세우기도 하셨고요." 지금은 그 아들이 재산권으로 천부교와 법적으로 다투고 있다.

     

    박태선도 처음에는 순순하게 교회를 다녔던 사람이고 허덕수 장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결과는 전혀 다은 모습으로 끝이 난 것이다. 사람들이 박태선에게 몰려가고 따르게 된 일도 무엇보다 그가 병 고치는 은사가 있다는 이유였다. 이단들의 대부분은 이렇게 시작한다. 아니면 종말론을 말한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과 지도자들에게서 우리는 맹신과 맹종을 함께 볼 수 있고 그 결과도 볼 수 있다.

     

    요약한다면 블레셋이라는 나라와 국지전이 있어 난 것이다. 당시 제사장은 엘리 였으며 나이가 98세로 시력이 거의 없는 정도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삼상4:15). 고 그의 마지막 시기였다. 그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홉니와 비느하스 였다. 그런데 전쟁에 나가서 처음에는 4,000 명이 죽었다(2). 그리고 이후에 3만 명이 전사하게 된다. 한 마디로 참패를 당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어난 오늘 본문 내용이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일이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인간으로 마땅한 일이며 사람이 해야 할 본분이기도 하다. 이스라엘이 이렇게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백성으로 산다는 것 그 자체가 복이다. 그런데 이런 축복은 건강한 신앙생활을 할 때 얻을 수 있는 것이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오히려 큰 낭패를 만나게 된다. 이런 냉패의 원인이 되는 것이 바로 맹신이고 맹종이다.

     

    그러면 오늘 본문에서는 어떻게 맹신과 맹종이 나오는지 보겠습니다. 다른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지만 오늘은 언약궤에 대한 맹신을 보겠습니다. 언약궤가 무엇입니까? 언약궤(Ark of the Covenant) 출애굽기에서는 증거의 궤(25:21-22)라고 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언약궤를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셨는데(25:10-22; 10:2-5), 그 치수는 대략 122×76×76cm이고 조각목(아카시아 나무)으로 만들어 안팎에 도금을 했다. 또 금고리 네 개와 채를 만들어 고리에 꿰어 빼내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25:12-16). 언약궤를 운반할 때는 아래쪽 네 귀퉁이에 달린 고리에 막대기를 끼워 달았다. 언약궤의 뚜껑에는 양 옆에 서로 마주보고 날개를 펼치고 있는 두 그룹이 있었으며, 언약궤 안에는 십계명의 돌판과 만나 항아리, 아론의 지팡이(9:4- 5)를 넣었다. 3. 또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장막을 지성소라 일컫나니 4. 금 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판들이 있고 5. 그 위에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으니 이것들에 관하여는 이제 낱낱이 말할 수 없노라.

     

    지성소에 있었던 언약궤는 하나님과의 만남의 장소였으며, 이곳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계시하셨다(25:22). 또한 언약궤는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요단 강을 건널 때 언약궤를 앞세우고 갔으며(3:1-17), 여리고 성을 함락시킬 때에도 언약궤를 앞세웠다(6:4, 8). 일시적으로 언약궤를 블레셋인들에게 빼앗기기도 했으나(삼상 4), 다윗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가져왔다(삼하 6:1-5; 대상 13:13). 솔로몬은 언약궤를 예루살렘 성전에 보관(왕상 8:1)하였으나, 므낫세는 자신이 아로새긴 아세라 목상과 언약궤를 바꾸어 놓았다(대하 33:7). 후에 요시야가 이를 원상복귀시켰다(대하 35:3).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후 언약궤가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한 자료는 남아 있지 않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상징이었다. 이 언약궤도 성막도 성전도 마찬가지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서 봅니다. 그런데 전쟁에서 4천 명이 죽은 겁니다. 당연히 이길 거라 생각했었는데 큰 충격이었다.

     

    3. 백성이 진영으로 돌아오매 이스라엘 장로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에게 오늘 블레셋 사람들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

     

    이들도 생각하기를 하나님께서 이 전쟁에서 패배하게 된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이런 자세는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 앞에서 돌아보는 것이다. 일이 잘 되어도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런 은혜를 주신 이유가 뭘까를 생각해야 한다. 사업이 잘 되면 하나님께서 내게 이런 기회를 주신 이유가 뭘까? 반대로 어려움을 만나도 뭐가 문제인가? 하나님께서는 뭘 말씀 하실까를 생각하는 것은 좋은 습관이고 태도라 할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결론을 내린다. 3절에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저는 여기서 눈에 거슬리는 표현이 있었다. 그것은 그것으로. 즉 하나님의 언약궤를 말한다.

     

    이것은 그들의 신앙, 믿음에 있어서 아주 심각한 점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오늘 말하는 맹신에 해당하기도 한 것이다. 솔로몬 왕은 왕상 8장에서 이렇게 고백한 적이 있다.

     

    27.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 28. 그러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돌아보시며 이 종이 오늘 주 앞에서 부르짖음과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29.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이 거기 있으리라 하신 곳 이 성전을 향하여 주의 눈이 주야로 보시오며 주의 종이 이 곳을 향하여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30. 주의 종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 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주는 그 간구함을 들으시되 주께서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사 사하여 주옵소서.

     

    분명하게 차이가 있다. 솔로몬은 성전을 완성하여 언약궤를 성전으로 옮기면서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하나님을 모실 수 없다고 하면서 성전에 언약궤를 옮긴다. 그리고 기도할 때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 그 언약궤 안에 계신 것이 아니라 주께서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라는 고백을 한 것이다.

     

    하지만 이스라엘 장로들은 지금 그 언약궤가 마치 전쟁에서 이기게 하는 힘이라도 되는 것처럼 착각한 것이다.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그런데 그 누구도 이 일에 이런 결정에 이견이 없이 동의하고 실행한다.

    4. 이에 백성이 실로에 사람을 보내어 그룹 사이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의 언약궤를 거기서 가져왔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언약궤와 함께 거기에 있었더라.

     

    이스라엘의 군사들은 4천 명이 죽은 것은 그만 뒤로 하고 다시 전투욕구를 올리고 있엇다. 5. 여호와의 언약궤가 진영에 들어올 때에 온 이스라엘이 큰 소리로 외치매 땅이 울린지라.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가?

     

    이스라엘 진영에서 큰 소리가 나는 걸 보면서 블레셋 군인들도 알게 되었다. 물론 이들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생각은 분명 우리와도 다르고 성경적이지 않게 표현한다.

     

    6. 블레셋 사람이 그 외치는 소리를 듣고 이르되 히브리 진영에서 큰 소리로 외침은 어찌 됨이냐 하다가 여호와의 궤가 진영에 들어온 줄을 깨달은지라 7. 블레셋 사람이 두려워하여 이르되 신이 진영에 이르렀도다 하고 또 이르되 우리에게 화로다 전날에는 이런 일이 없었도다 8. 우리에게 화로다 누가 우리를 이 능한 신들의 손에서 건지리요 그들은 광야에서 여러 가지 재앙으로 애굽인을 친 신들이니라 9. 너희 블레셋 사람들아 강하게 되며 대장부가 되라 너희가 히브리 사람의 종이 되기를 그들이 너희의 종이 되었던 것 같이 되지 말고 대장부 같이 되어 싸우라 하고

     

    이들이 지닌 하나님에 대한 신관은 지나가도록 한다. 다시 결과를 보면 이렇게 되어 있다.

    10. 블레셋 사람들이 쳤더니 이스라엘이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고 살륙이 심히 커서 이스라엘 보병의 엎드러진 자가 삼만 명이었으며 11.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더라.

     

    결과는 그들이 의지하고 가져온 하나님의 궤,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하지만 보기 좋게 그 언약궤까지 빼앗기고 말았다. 자신들을 구원할 것이라던 그 언약궤조차 빼앗긴 것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이스라엘 장로들과 백성들이 생각했던 언약궤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이것만 있으면 만사형통할 것처럼 생각한 그런 언약궤가 아님이 드러난 것이다.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그 언약궤만 보았던 것이고 그런 말만 해 왔었기에 이런 결과에 이르게 된 것이다. 오늘 우리들의 믿음이 잘못하면 하나님은 함께 하지 않으신데 하나님 이름만 앞세우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는 일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오늘 본문에서 심지어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제사장으로 함께 있었지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들 역시 죽는 결과에 이른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장로들이 생각할 때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삼상2

    12.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 13. 그 제사장들이 백성에게 행하는 관습은 이러하니 곧 어떤 사람이 제사를 드리고 그 고기를 삶을 때에 제사장의 사환이 손에 세 살 갈고리를 가지고 와서 14. 그것으로 냄비에나 솥에나 큰 솥에나 가마에 찔러 넣어 갈고리에 걸려 나오는 것은 제사장이 자기 것으로 가지되 실로에서 그 곳에 온 모든 이스라엘 사람에게 이같이 할 뿐 아니라 15. 기름을 태우기 전에도 제사장의 사환이 와서 제사 드리는 사람에게 이르기를 제사장에게 구워 드릴 고기를 내라 그가 네게 삶은 고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날 것을 원하신다 하다가 16. 그 사람이 이르기를 반드시 먼저 기름을 태운 후에 네 마음에 원하는 대로 가지라 하면 그가 말하기를 아니라 지금 내게 내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억지로 빼앗으리라 하였으니 17.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

     

    벱궤를 전쟁터로 옮겨오기 전에 생각했어야 하고 회개 했어야 했다.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시다. 하나님이 약해지셔서 전쟁에 진 것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 하나님 앞에 내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모습을 살펴봤어야 했다. 자기 돌아봄 없는 기독교 믿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설교를 들어도 자기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기도를 해도 마찬가지다. 일이 잘되어도 어려워도 자기를 돌아봐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면해서 그 말씀을 소화하도록 묵상해야 한다. 그 시대에 그렇게 하는 사람은 사무엘뿐이었다. 그 어머니 한나로부터 이어진 그의 믿음은 여전 하나님 앞에서 말씀 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였다.

     

    맹종과 맹신은 자기 돌아봄 없이 미신적이고 기복적인 신앙을 가지려 할 때 활개 한다. 자기희생 없고 헌신 없이 더 좋은 것을 얻으려 하고 심지어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조차도 더 큰 것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될 때 자리 잡게 된다. 입술로만 아무리 하나님을 말하고 떠들어도 하나님의 영광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하나님의 일 하심과도 무관하게 된다.

     

    4장은 이렇게 마무리하고 있다.

    19. 비느하스의 아내가 임신하여 해산 때가 가까웠더니 하나님의 궤를 빼앗긴 것과 그의 시아버지와 남편이 죽은 소식을 듣고 갑자기 아파서 몸을 구푸려 해산하고 20. 죽어갈 때에 곁에 서 있던 여인들이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아들을 낳았다 하되 그가 대답하지도 아니하며 관념하지도 아니하고 21. 이르기를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고 아이 이름을 이가봇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의 궤가 빼앗겼고 그의 시아버지와 남편이 죽었기 때문이며 22. 또 이르기를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으므로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였더라.

    • 김옥숙2020.10.04 20:26

      오늘도 온라인이지만 예배드릴수 있어서 감사하며 다음주부터는 교회에서 예배드릴수 있도록 더 기도하겠습니다.
      믿음을 말하면서 하나님과 무관한 믿음, 또한 형식과 매너리즘에 빠진 믿음이 되지 않고 늘 말씀을 들을때마다 또다시 나를 살펴 건강한 믿음으로 나아가도록 늘 긴장의 끈을 풀지 않길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잘 이해하고 하나님의 함께하심가운데 늘 믿음에 합당한 모습으로 나아가게 하시고 맹종과 맹신의 우를 범하지 않도록 늘 분별력과 지혜를 허락하옵소서 아멘
      오늘도 예배준비하시고 귀한 말씀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 김선애2020.10.05 12:30

      매주 사모하는 이들에게 예배에 참여하도록 준비하여 주신 목사님 사모님 감사합니다.

      코로나 시대를 살고 있지만 동시에 교회가 공개적으로 지탄받는 시대를 살고 있다.
      여러 문제점이 제시되고 있고 그중에 맹종과 맹신이 있다는 생각을 한다.
      건강한 신앙생활은 바른 말씀을 배워서 순종해야하고 그래서 믿음이 잘자라야
      한다. 모두 출발선에서는 순수했다. 과정에서 잘못되어 결과가 모두 비극이 되어버
      려 비참함에 이른다. 이전에 했던 방식을 그대로 가져와 변화하지 못하게 하는것은
      늘 자신을 살피고 더 진보하기에 힘쓰는 노력이 사라졌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했다.
      반복하는 종교생활 나의 습관이나 안일함 그 안에서 편안하면 교만해지고 어리석음
      에 빠진다. 나는 날마다 나를 살피는 말씀과 기도의 습관인지 아니면 그냥 하던것을
      계속하는것인지 생각하는 한주가 되어야하겠다.
      일관성있게 계속해야할것과 교정되어 새롭게 달라져야할것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기도하면서 믿음이 성숙되어 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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