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7), 부활이 없다고 하느냐(고전 15: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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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01 고전 15:12-20 / (6), 부활이 없다고 하느냐

     

    12.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13.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14.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15.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16.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18.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이슬람교의 한 종파인 알라위파가 있는데 알라위파는 죽기 전 지상에서의 행위가 어땠느냐에 따라 다음 생에서 지상에서의 환생 결과가 정해진다고 믿는다. 현재 시리아정부군 등, 그 종파를 믿는 민족은 자신들이 원래 하늘의 별이거나 신성한 빛이었지만, 불복종으로 인해 천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반복된 환생을 겪어야 한다고 본다.

      

    모든 라마교 신자들은 달라이 라마가 죽어도 환생해서 돌아온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특히 14대 달라이 라마는 어릴때에 현신으로 발견되었다. 13대 달라이 라마가 임종 직전에 자신의 환생을 예고하였다. 그 후 13대 달라이 라마의 유언에 따라 라마(고승)들은 앞에 호수가 있는 하얀색의 집을 찾아 나섰다. 1935년에 암도 지방에서 그 집을 발견하였는데, 그 곳에 라모 돈드럽이 있었다. 그때 관리가 라마라는 것을 돈두럽은 알아챘으며 라마들의 이름을 알아맞추었다고 한다. 그리고 돈두럽을 라싸로 신자들이 데려와서 큰 북과 작은 북을 각각 한 개씩 가지고 왔는데 놀랍게도 작은 북을 집었다. 그 북은 13대 달라이 라마가 자신의 시종을 부를 때 사용하던 북이었다. 이렇게 해서 달라이 라마의 환생은 재증명되었다고 믿고 있다.

      

    고대 그리스의 오르페우스 신앙에서는 육식을 절대 금하고, 신도들에게 채식만을 강요했는데, 사람이 죽으면 동물로 다시 태어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플라톤 같은 고대 그리스의 유명한 철학자들도 인간이 다시 태어난다고 주장했다. 플라톤은 영혼의 윤회를 주장한다. 인간의 육체가 죽게될 때 영혼은 육체와 분리되어 지상에 있을 때 얼마나 영원한 진리와 이데아를 많이 보았나 못 보았나에 따라 다른 육체에 다시 자리잡게 될 때 높은 단계에 자리할 수도 있고 동물 등과 같은 낮은 단계에 자리잡기도 한다는 것이다.

      

    또한, 피타고라스는 인간이 죽으면 그 영혼은 콩으로 들어가 잠시 머물러 있다가 다시 다른 인간이나 동물로 태어난다고 믿었다. 그래서 피타고라스는 육식을 금했을 뿐 아니라 콩을 절대로 먹지 않았다고 한다.

      

    1637(인조 15)에 유복자로 태어나 어머니로부터 엄한 교육을 받았다. 16세에 진사에 합격하고, 29세에 정시 갑과에 장원으로 합격하여 벼슬생활을 시작한다. 강직한 성격 때문에 인해 여러 차례 유배생활을 한다. 그는 32세 때에 현종에게 미움을 받아 파직당하고 유배의 길에 오른다. 그 후에 다시 벼슬직을 역임하다가, 37세에 예송논쟁에 휘말려 유배를 갔다가 다시 벼슬길에 오른다. 그리고 숙종 9년의 해였던 47세 이후 두 번의 대제학에 오르는 영광을 누린다. 51세에 희빈 장씨의 일을 직언하다가 숙종의 미움을 받아 파직 당하여 유배길에 올랐다. 후에 숙종은 80세의 노모인 어머니가 애통해함을 이유로 잠시 서포를 석방했다가 다시 희빈 장씨를 논해서 또 귀양을 간다. 서포는 결국 유배지에서 모친상 소식을 접하고 숙종 1856세에 영원히 세상을 떠났다

      

    소설 <구운몽> 조선이 낳은 신개념 판타지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무려 해리 포터보다 400년이나 앞섰다.

      

    선계에서 육관대사 밑에서 불도를 수행하던 성진이 동정호의 용왕에게 심부름을 갔다가 팔선녀와 노닥거리고 만다. 돌아와서 세속의 욕망 때문에 고민하다가, 스승에게 걸려 팔선녀와 함께 세속으로 떨어져 양소유라는 사람으로 태어나 승상까지 오르고 여덟 부인(팔선녀)을 얻어 잘 먹고 잘 놀며 잘 살게 되었는데, 사실 다 꿈이었고 꿈에서 깨어난 성진은 스승의 말씀을 듣고 크게 깨우쳐 육관대사와 같이 훌륭한 존경을 받게 되었다는 이야기. 팔선녀도 비구니가 되어서 같이 도를 닦는다는 내용이다.

      

    지금까지 이야기 한 내용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죽음 이후를 말한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죽음 이후는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행위로 구원 얻는 상상들이다.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있다. 특히 나이가 50이 넘어가면 더 그런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으로 고민하면서 명백한 현실을 말해도 준비하지 않는 것이다. 죽는 것만큼 분명한 것은 없다. 지난 주일에도 말씀드렸습니다. 9: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법이 되었고 그 이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성경은 많은 사건과 역사와 전쟁 그리고 교훈과 시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한 역사나 단순한 시가 아니다. 모두가 예수님을 알리기 위한 것들이다. 그래서 성경의 중심과 결론은 예수님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우리 인간의 죽음과 저주를 해결하기 위해 오신 분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신 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고 그 약속하신 말씀을 따라서 오신 분이다.

      

    그러면 예수님이 왜 오셨고 오셔서 무엇을 하셨는가? 예수님은 창세기에서부터 오실 것이라고 약속되어 있었다. 그 약속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죄를 짓고 죽게 되면서 우리에게 알려진 것이다. 사람이 본래부터 병들고 죽게 창조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면 복되고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다. 일을 해도 스트레스가 아닌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찬양하는 결과를 보게 되었다. 먹을 것을 얻게 되어도 감사하며 먹을 것을 지으시고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게 되어 있었다. 시편 136편처럼 그랬을 것이다. “25. 모든 육체에게 먹을 것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6.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전체가 26절로 이루어진 시편 136편에서는 매 절마다 예외없이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는 후렴이 반복된다. 이것으로 보아 이 시편 136편은 이스라엘 회중이 예배드릴 때에 사용하도록 만들어진 시편이라는 데에 이견이 없다.

    그런데 성경에는 얼마나 많은 고통과 슬픔과 애곡하는 것이 많이 나옵니까? 반면 요한 계시록 21장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여러분 이런 나라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날이 오기를 이런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바로 이곳에 우리를 들어가게 하시려고 이곳으로 우리를 인도하시기 위해 하나님이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그 아들 예수님이 오셨고 모든 일을 충실하게 하셔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곳인지를 알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이 이 하나님의 나라에 갈 수 있도록 우리의 죄 값을 대신 치르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던 것입니다. 그 십자가의 죽음은 그 어떤 죽음과도 비교할 수 없는 끔직하고 고통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죄는 쉽게 지을 수 있어도 그 죄 값을 치르는 것은 실로 말로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문제는 우리는 아무리 선행을 쌓고 착하게 산다고 노력해도 결국 자신의 죄 하나 해결 할 수 없는 무능하고 부패한 존재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저와 여러분을 대신 하신 것입니다. 다른 방업이 없었습니다. 왕도 제사장도 선지자도 대신 해 줄 수 없었습니다. 오직 한 분, 죄 없는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고전 15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2.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5.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이렇게 해서 죄 값은 끝났습니다. 그래서 누구라도 예수님을 믿으면 더 이상 내 죄를 묻지 않으시고 용서하시며 받아주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주님을 만난 사람은 더 이상 이전에 살던 방식을 따르지 살지 않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삶, 새로운 삶입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 성도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바울이 전해 주었던 복음에서 떠나 부활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생긴 것입니다. 고린도지역은 헬라철학이 성행하고 그런 문화가 자리 잡은 도시입니다. 영향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도 얼마나 많은 이론과 철학과 유행과 문화가 사람들을 혼란하게 합니까. 그래서 어느 시대이고 하나님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은 동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두고 대면해야 합니다. 배워야 하고 함께 모여 기도해야 하고 흩어지면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초대교회도 그랬고 히브리서도 모이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습관을 따라하지 말고 모이기를 힘쓰라고 그리고 서로 권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믿음으로 주님을 섬기길 축복합니다.

      

    12절을 다시 보면

    2.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이 말씀은 부활을 확실하게 증언하는 것입니다. 부활은 앞서 말씀드린 다양한 종교들이 말하고 있는 환생이 아닙니다. 윤회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그 모습은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음식도 먹고 이야기도 하고 그러나 부활 이전의 형태가 아닌 다른 모습입니다. 이런 상태는 현존하는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성경이 증언하고 있는 사실에 대하여 믿는 것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이해 할 수 있는 신비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만약 부활이 없다면 헛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있습니다.

      

    부활이 없다면 1. 예수님도 살아나지 못하셨을 것이다. 2. 그러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된 것이다. 3. 우리가 믿는 믿음도 헛것이다. 4. 우리는 모두 거짓말하는 사람들이 될 것이다. 5. 여전히 우리가 죄 가운데 있을 것이다. 즉 죄를 용서 받지 못할 것이다. 6. 이미 죽은 사람들도 모두 멸망했을 것이다. 천국에 아무도 없을 것이다. 7. 부활이 없고 끝이라면 우리 믿는 사람들이 제일 불쌍한 사람들이 될 것이다.


    런데 놀랍게도 다행인 것은 우리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할렐루야 !

      

    첫 열매가 되셨다는 것은 우리를 대표해서 부활의 첫 사람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모두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처럼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 신앙은 십자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죽음을 이기고 살아나신 부활의 종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부활은 매우 중요하고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핵심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사역 기간 동안에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11:25-26)라고 선언하셨던 그대로입니다.

      

    이런 부활 신앙은 이미 구약에서 에녹과 엘리야가 죽지 않고 승천한 사실을 통해 가르치고 있습니다. 아담이 죄를 짓고 죽기 시작했지만 죽음이 아닌 또 다른 삶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절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하며 천국의 소망을 굳게 하시기 바랍니다. 이 땅에 것만 바라보고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 천국을 사모하며 이미 예수님 안에서 시작된 그 믿음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부활이 없다면 불행하다고 말한 7가지가 이제는 부활 때문에 축복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부활이 분명하기에 1. 예수님도 살아나셨습니다. 2. 그래서 우리가 전파하는 것이 헛되지 않습니다. 3. 우리가 믿는 믿음도 현실로 나타날 것입니다. 헛것이 아닙니다. 4. 우리는 모두 거짓말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진실을 말하고 진리를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5. 여전히 우리가 죄 가운데 있는 것이 아니라 죄를 용서 받아 심판이 없습니다. 6. 믿음 안에서 하나님 나라에 간 모든 성도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7. 부활이 있기에 가장 불쌍한 사람들이 아니라 가장 복되고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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